뻔뻔한 영철씨의 Fun Fun House – 개그맨 김영철 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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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10년 넘게 둘째 누나와 함께 지냈다. 마흔한 살이 되어서야 온전히 독립된 공간을 갖게 된 그는 ‘내 집이 생긴다면…’ 하고 상상했던 모든 요소를 집 안 구석구석에 녹여냈다. 김영철이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요구한 것은 두 가지로 집 전체가 하나의 캐주얼한 라이브러리 같았으면 좋겠다는 것과 ‘꿈의 도시 뉴욕’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내달라는 것. 공간 스타일링을 담당한 ‘꾸밈 by 조희선’의 임종수 디자이너는 서재를 따로 만드는 대신 거실을 서재화하고 책장의 칠판 도어, 모던한 프린트의 뮤럴 벽지, 독특한 레일 조명 등을 활용해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 있는 듯한 느낌을 연출했다. 자신이 소원해온 집을 가져서인지 김영철은 요즘 싱글 라이프에 푹 빠져 있다.“저 이래 봬도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서 살림은 못했거든요.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 누나가 어무이­처럼 보살펴줘 라면 끓이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는데 요즘 짬 내서 빨래, 청소, 음식 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살림을 시작하면서 그는 바쁘다는 핑계로 놓친 부분을 새삼 깨닫고 있다. “바빠서 할 시간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쪽으로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제부터라도 무심코 지나쳐온 부분을 살펴봐야겠어요.” 세탁물을 두 번 탁탁 털어 건조대에 널면 웬만한 셔츠는 다림질하지 않아도 입을 수 있다고 신기해하는데, 표정이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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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관리 잘하기로 소문난 김영철은 라디오 녹음이 있는 날은 오전 5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6시부터 라디오 [김영철의 펀펀 투데이]를 진행하고 11시께 첫 끼를 먹는다. 이후 영어 학원에 다녀오고 운동하러 갔다가 저녁에는 대개 사람을 만난다. 스케줄이 없더라도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편. 아침잠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어와 개그,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몇 해 전부터 아침잠을 포기하고 부지런을 떨게 된 것.“하나만 양보하면 되던걸요. 아침잠을 포기하니까 영어도 일도 다 얻게 되었어요. 부지런해지고 나서 인기도 많아졌다고 생각해요.” 김영철과 영어는 필연적이다. 데뷔와 동시에 정상에 올랐고 사람들의 높은 기대치와 그럴수록 가중되는 부담감은 그를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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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탈출구가 되어준 것이 영어 공부였다. “지독한 슬럼프를 겪고 있을 무렵 지인의 추천으로 2003년 여름에 ‘몬트리올 코미디 페스티벌’을 보러 갔어요. 그때 제 꿈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고 영어부터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해 9월부터 시작한 영어 공부를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2007년에는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기초영어 초급 강사로 강의를 시작했고, 출판사로부터 ‘영어책 출간’ 제의를 받아 2007년 [뻔뻔한 영철영어]를 내놓았다.그리고 2010년에는 서울예술전문학교 호텔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가 되기도 했다. 서른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한 영어 공부가 김영철에게 4권의 영어책을 낸 저자이자, 번역자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김영철의 인생에 영어는 장기이자 개인기이며, 무기이자 특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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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나서기를 좋아한 김영철은 철들고 나서부터 연예인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대학 전공은 ‘호텔경영학과’를 선택했다.“엄마의 반대가 심했어요. 엄마는 연예인이 되면 부모가 뒷바라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에 취직하라고 회유하셨는데, 연예인이 되지 못할 거라면 서비스업이 맞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끼를 숨길 수는 없었다. 과별 응원대회를 하면 어김없이 응원대장으로 나섰고, 결국 1999년 KBS 개그맨 공채에 지원했다. 데뷔 직후 탁월한 개인기와 개그감으로 6개월 만에 정상에 올라선 김영철은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거머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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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광 뒤에 찾아오는 시련은 더욱 큰 법. 다행히 영어를 통해 슬럼프를 극복하고 요즘 제2의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강호동이나 유재석처럼 1등이 되어 살 수도 있지만 2등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만약 1등이 되면 그 환경에 적응하며 살겠지만 2인자의 삶도 나쁘지 않아요. 저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1등이란 자리가 주어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1등을 꿈꿀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데뷔 16년 차 김영철은 1등이 되지 못해 안달하지 않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2등처럼 여유로워 보인다. “못 웃긴 날에는요, 신인 때는 그걸로 술을 한잔했거든요. 3~4년 차에는 속상해했고, 5~6년 차에는 선배를 찾아갔던 것 같고, 7~8년 차에는 모니터를 다시 했어요. 그러다 요즘은요, ‘아 오늘 좀 못 웃겼네, 다음 주에 조금 더 웃기지’ 이렇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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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김영철은 노래방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다. “예전에 최화정 누나가 저한테 건강한 매력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제가 원래 음지나 지하, 이런 공간에서 이뤄지는 문화를 별로 안 좋아해요.” 술을 워낙 좋아해 일주일에 서너 번은 지인들과 술자리를 갖지만 밤 11시가 되면 집에 귀가한다고. 이렇게 ‘건전한’ 그가 왜 아직 배필을 만나지 못한 걸까? “이게 약간 ‘웃픈’ 이야기인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만 있더라고요. 나를 좋아하는 여자와 내가 좋아하는 여자. 이성과도 두루 잘 지내는 편인데요, ‘난 오빠 아니면 안 돼’ 하는 여자가 없어서가 아닐까요?” 이상형을 묻자 가장 중요한 것은 유머 코드라고 했다.“[개그콘서트] 보면서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밝고 잘 웃었으면 좋겠고, 당연히 예쁘고 날씬하면 좋겠죠. 하하.” 하지만 요즘 그는 연애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년 초 본격적으로 미국 진출을 앞두고 이뤄야 할 것이 많기 때문. “드라마를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드라마를 즐길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신동엽 선배가 골프를 시작하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고 강력하게 추천하는데도 아직은 먼저 이뤄야 할 것이 많아서 미루고 있어요. 솔직히 결혼에 대한 갈등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결혼보다 꿈이 먼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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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나이로 마흔한 살, 김영철은 요즘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준비 중이다. “아는 형이 마흔이어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제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인데요. 그러면서 저한테 스물한 살로 살라고 하는데, 그 말이 그렇게 설레었어요.” 물론 또렷한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까지 방송 열심히 하고 내년 초에 미국에 갈 생각이에요. 영어 포트폴리오는 어느 정도 완성되었고, 지금부터 국내 활동을 더 열심히 해서 비디오 클립도 만들 거예요. 인맥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고요.” 최종 목표는 배우 김윤진처럼 미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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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족 시트콤에서 ‘신 스틸러(scene stealer)’ 같은 캐릭터를 잘 잡으면 승산이 있어요. 딱 맞는 캐릭터를 만나서 제대로 한 방 터뜨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심지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플랜 비(Plan B)도 갖고 있었다.“할리우드 공략 기간은 1년에서 2년 반 정도로 잡고 있어요. 일단 영화, 시트콤, 스탠드업 코미디, 쇼 프로그램 보조 MC 등 가리지 않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안 되겠다 싶을 땐 빨리 돌아오려고요. 단 영어는 ‘판타스틱’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제대로 공부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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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은 10여년 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서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을 들을 날이 올까 싶었다고 했다.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갈 때는 나이 말하는 게 그렇게 싫더라고요. 지금은요? 나이를 먹을수록 배움이 많아지고 세련되어지는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어요. 오십이 되어도 꽤 멋진 중년으로 나이 먹을 수 있다면 나이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가수 싸이처럼, 배우 김윤진처럼 할리우드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 코미디언 1호는 누가 될까? 어디선가 김영철이 대답한다. “Here I am!”      [우먼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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