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_버거움 ..

NO.19-04​ 카보나움 Capharnaum, Capernaum, 2018​ ​*관람 2019.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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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나딘 라바키 출연자 알 라피아, 요르다노스 시프로, 볼와티프 트레저 반콜, 하이타 아이잠의 수갑 푼 손을 보여 달라는 판사의 말에 호들갑스럽게 두 손을 내밀며 사람이 아닌 개눈을 칼로 찔렀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자인(자인 아라피아)의 태도에 당황하지 않고 소년은 부모를 고소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부모들은 심지어 자식들의 출생 신고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부모도, 아이의 정확한 나이와 날짜를 모른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를 그들은 도대체 몇 명 낳았는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잠 못 이루는 자인을 넘어… 한숨이 나오는 신음소리가 들릴 뿐이다. 영화가 시작한지 10분도 되지 않아 시인이 왜 부모를 고소했는지 충분히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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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밀이야?자인(자인 알 라피아)과 사의 수쿠르(하이타와 잼)은 10세도 안 될 만큼 작고 마른 체형이었다. 12세 정도로 추정되는 자인은 아사드의 가게 일을 돕는다.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가스통과 식료품을 배달해 나른다. 자신을 귀여워하는 어른에게 과격한 말과 거부감을 보이고, 곧 작은 동생은 사할을 귀여워하는 아사드가 건네준 라면과 감초 사탕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사할 초경을 알고 속옷을 대신 빨아주고 생리대를 훔쳐주며 부모님 몰래 버리는 법까지 알려준다. 엄마와 아빠가 아는 순간 아사드에게 팔아넘길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자인이 왜 사하르의 초경 소식을 부모님께 비밀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인이 자연스레 그렇게 생각한 것은 그동안의 부모가 보여준 태도에 대한 학습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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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드에게 팔릴만한 결혼 사하르를 보내.. 자칼은 집을 떠날 엄두도 못 내고 그는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을 만난다. 불법체류자인 그녀는 혼자 요나스를 낳고 돌보는 사람도 없어 가게 화장실 한 구석에 숨겨둔 채 수유. 퇴근길에 몰래 같이 돌아가다 서로의 상황이 상황이 상황이니까… 라힐은 자신에게 요나스를 맡기고 일하러 나가는데, 어느 날 그녀는 엉뚱하게 잡혀 그들에게 연락도 되지 않은 채 끌려간다. 이 사실을 모르는 자인은 그녀의 행방을 찾아 결국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해. 자신은 자신의 부모와 달리 최선을 다해 요나스를 돌보지만, 그도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결국 그는 불법 입양 브로커에게 요나스를 맡기고 레바논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배를 타려면 자신을 증명할 서류가 필요한 상황. 떠나온 집을 다시 돌아가 서류를 찾던 중 자신은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동생 사하르가 임신상태로 병원에 갔지만 출생신고가 안 돼 접수 자체가 불가능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자인은 칼을 들고 아사드를 찾아갔다. 신의 선물…? 자인의 어머니 수아드는 신은 하나를 가져가면 하나를 선물한다고 말한다. 사할 대신 받은 선물은 또 다른 임신이었다.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말한 신의 선물은 세상에 나와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어린 애들도 아는 걸… 부모는 아무도 우리를 비난할 수 없다고 감정적으로 호소한다. 법정에서도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이가 태어날 것을 걱정하는 자이다. 나는 그들의 무지에 화가 났다. 본능에 충실한 행위라 할지라도… 낳아놓고 그들을 대접할 부모가 과연 자격이 있는가. 그들은 무지에 이른 당당한 태도가 너무나도 뻔뻔스러웠다. 자인과 사하라를 비롯한 아이들은 그냥 방치됐다. 부모는 그들을 사랑으로 존중하기는커녕 길에 버리지 않았을 뿐. 아이들을 돈벌이에 이용했다. 낳았다는 이유로 신의 선물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 부모자격이 되는 사람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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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캐스팅에 어두운 가슴을 안고 엔딩 크레딧을 마주하기 전 자인을 연기한 배우는 물론 대사 없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요나스 역의 아이는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실제로 길거리 캐스팅된 비전문 배우들이었다. 사실 배달일을 했던 시리아 난민 표시… 본인에게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무거운 것이 내려앉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에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 그들의 진정성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자인을 변호해 준 나딘, 영화의 감독이기도 한 그녀에게 매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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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니와 쇼타, 그리고 자인 영화의 전단지를 보면,와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둘다 너무너무 사랑하는 작품이지만.. 특히 뭔가… 그들에겐 그래도 그들을 정말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깐… 비교하기에는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아. 사할을 잃고 부모에 대한 분노와 라힐에 대한 오해로 쌓인 부모라는 존재. 그들처럼 하지 않겠다는 책임감으로 사할을 지키려 하고 요나스를 지휘한 자인이 자꾸 아른거린다. 자신에게 이런 고생을 안겨주고도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었던 부모의 눈물겨운 호소도(또 다른 의미로)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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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아사드를 칼로 찌른 혐의로 5년을 선고 받은 그는 자신에게 면담 온 어머니의 임신 소식을 듣고 한번 분노한다. 그리고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있는 생방송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익숙한 자신의 목소리.대개 이런 장면에서는 스릴을 느끼게 되는데 자인의 호소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여기저기 기어다니는 아이가 귀찮아서 쇠사슬로 발목을 묶어놓고, 학교도 못가고 몸보다 무거운 배달일을 시키면서.. 처음 시작한 딸을 남자에게 팔아먹는 이들을 부모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모습이 레바논의 일상이었다면영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하루빨리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라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자신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벅찬 영화였지만, 이 괴로움을 아이들에게 결코 지우고 싶지 않다…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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